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 페이건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* 리버풀의 비공식적인 코치진 회의실이자, [[붉은 제국]]을 탄생시킨 리더쉽의 산실인 '[[부트 룸]]'을 탄생시킨 인물이기도 하다. 페이건은 코치 시절 초창기, 선물받은 [[기네스]] 맥주 상자를 안필드 내 축구화 장비실인 [[부트 룸]]에 보관했는데, 여기서 코치들이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리버풀 [[부트 룸]] 역사의 시초다. * 리버풀에 코치로 입단한 후 홈구장 [[안필드]]에서 몇 블록 떨어지지 않은 매우 가까운 주택에서 평생을 거주하였다. 이에 페이건은 경기장으로 걸어서 출근하곤 했다고 한다. * 페이건은 코치 시절 선수들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여겨지며 많은 존경을 받아온 지도자로 유명했는데, 그의 인품은 단순히 선수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. 그의 동료였던 [[로이 에반스]]에 따르면 [[부트 룸]] 내의 코치진들의 관계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접착제같은 인물이 바로 페이건이었다고. * 페이건은 침착하고 조용하게 선수들에게 정확한 조언을 해주는 코치였으나 잘난체하거나 혹은 건방지거나, 규율을 어기는 선수들에겐 매우 강경했다고 한다. 페이건 하의 주장이었던 [[그레이엄 수네스]]에 따르면 잘못한 선수들에게 그만의 조용한 방식으로 정말 심한 말을 하는 장면을 종종 봤다고 한다. * 샹클리의 전기를 작성한 스티븐 F. 켈리에 따르면 페이건은 "고무같은 얼굴의 남자"였다고 한다. 항상 말랑한 미소를 띄고있었기 때문이라고. * 부임 당시 62세로 리그 최고령 감독이었으며, 첫 시즌 [[유러피언 컵]]을 우승했을 때는 63세로 당시 역대 유럽 대항전 우승 감독 중 최고령 기록이었다. 페이즐리의 후임자였으나 나이가 많았기에 일찍 감독직을 은퇴할 수 밖에 없었다. * 1938년 10월 맨체스터 시티 시절, 그는 미래의 아내 릴리안 포크를 만났고 2년 뒤 전쟁 중 해군에 입대하기 전에 결혼식을 올렸다. 그들의 첫 아이는 그가 이집트에 주둔하던 1945년 태어났고, 그와 릴리안은 모두 다섯 명의 아들과 한명의 딸을 가졌다. 릴리안은 2010년 10월 4일 92세의 나이로 링컨셔 요양원에서 사망하면서 페이건보다 10년 가까이 더 오래 살았다. * 페이건은 자동차를 상당히 좋아하는 자동차 마니아기도 했다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